어느덧 칼라는 사라지고
명암도 불분명해지고
수묵담채화인지
먹물범벅인지 알 수 없다.
윤곽만 남는다.
기억하는 것은 수평선처럼
한줄기 선 뿐이다.
바라던 것 말이다.
가지고 싶은 작은 소망이라고 멋있게 말들하지.
멋있는 것은 말 뿐이고
오래고 오래되어 제대로 생각도 나지 않아서.
윤곽까지 희미해져.
바라던 것이 결국에는 한줄기 선으로만 남아있다.
수평선
습관적으로 노트에 한 줄 가로선을 길게 긋고 나서
종종
씁쓸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생긴
바다에 가고 싶다.
병들어 죽어 가던 어느 배우의 마지막 소망처럼
나도 바다에 가고 싶다.
마음속으로 되뇌이면서.
…
지금이라도 가면 되지 않겠느냐.
말해 주는 사람도 있지만.
…
하지만
어쩌면 좋으냐.
항상 노트를 가르키며 똑같은 말만 하게 되는걸
…
정말 이렇게 생긴 바다에 가고 싶어.
…
나는 정녕 바다에 가고 싶은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렇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바다에 가고 싶은 것이 아니다.
놓고 온 것을 가지러 어딘가에 가고 싶은 것이다.
단지 그곳이 바다끝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남겨 놓고 온 것을…
놀이터에 남겨두고 온
하드바 먹고 남은 막대기로 만든 허수아비 처럼
잠깐 이라도 즐거웠던 것들
내게 아무 이유없이 즐거웠던 것들
왜? 그곳에 남겨두고 왔을까?
왜 버려두고 왔을까…….
스스로에게 측은해 진다.
…
아무곳이나
바다 끝이라면…
너울 너울 밀려 어느곳 해변가에 있지 않을까?
별거 아닌 것들에 대한 생각이 끝없이 먼 수평선을 만든다.
중간 중간 파도도 만든다.
더러 더러 바람도 만든다.
…
그렇지만.
…
그곳으로
그래도
기어코
도로 가지러 가야겠다.
…
…
사진은 캘빈의 것이다.
하지만 수평선 너머에 있는 그 허수아비는 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