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 피던 날
분홍이 꽃잎들이 곱게 날리던 그즈음 이었다.
M에게서 K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
한쪽 다리가 잘렸다는.
…
왜 잘렸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어쨌든 이제 K의 한쪽 다리는 없는 것이니까.
M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유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것인게지”
K는 이제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M에게 물었고
알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정말 알 수 없는 것이었는지
알아보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더 묻지 않았다.
나도 그랬을 것이기에.
사꾸라가 다 떨어져 내리고
벚꽃나무 존재감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여름은 쉽게 왔다.
무덥게 찌는 어느 여름날
늦은 저녁에 다음날 까지 단지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24시간 만화가게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K를 보았다.
그저 그곳이 K가 다니던 학교 옆 이었으므로
필연이 아닌 필연
우연이 아닌 우연
어렵고 멋진 말 보다는
필연 반 우연 반 잡탕찌게처럼
죽기전에 만나고 싶은 사람은 꼭 한 번은 다시 만나게 되는
그런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것일 것이다.
K와 나는 그저 오랜만 이었다.
주고 받은 말의 전부.
그저 서로 여름이라 더웠을 뿐이다.
눅눅한 냄새가 나고
허름하기 짝이 없고
진열된 만화책도 그다지 많지 않은
그저 허섭쓰레기 창고 같은 그런 곳이었다.
K는 손님이 거의 없는 만화가게에서
함께 있던 몇몇의 탕아들과
꽃놀이 그림딱지 놀이를 하고 있었다.
담배를 꼬나 물고 열중하는 중이었다.
나름대로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노력하는 듯 보였다.
K는 그곳의 점원인 것이다.
다리를 절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의족이었음을 움직이는 모양새로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옜날 밝게 웃던 것과 여전히 같은
웃는 모양을 얼굴에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표정
똑같은 말투
그러나
다른 것이라면
눈빛부터.
발끝까지.
생기가 없어진 듯한
바랜 색깔이었다.
K는 색이 바래 있었다.
나의 편견이 그렇게 본 것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학창 시절에의 그 밝고 활기찬 K는 더 이상 아니었다.
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그저 요금을 주고
또 만나자는 흔한 인삿말을 건네고는 나왔다.
여름이라 더워서…
K는 그저 보통의 손님을 보내듯
그렇게 쉽게 나를 보내며
또 다시 꼬질꼬질한 화투패를 꼬나쥐었다.
우리가 언제 친한 친구였었는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몇일 뒤 그곳에 이.유.없.이. 다시 갔지만
만화가게는 없어진 뒤였다.
그 날 저녁이 마지막 날인 정리중 인 만화가게였다.
K의 인생과
폐점한 만화가게가
왜 생각속에서 함께 붙어 다니는 것일까?
꼭 그렇게 불길한 것들끼리는
친할 필요가 없는데.
…
K의 인생이 정리된 것은 아니니까.
M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K를 만났던 일을
K의 인생이 폐점된 것은 아니니까.
그 해 가을까지
K 생각이 줄 곧 내 머리속 한켠에 머물렀다.
봄, 여름, 가을
우리는 무얼 보고 계절이 바뀌었음을 아는 것일까?
풍경, 옷차림, 바람, 온도
…
그것 보다도 너무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다른 것은
계절 마다의 햇빛의 색이다.
눈부심의 정도와
떨어져 내리는 빗살들의 기울어짐
그것으로 달리 때마다의
다른 느낌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K는 그렇게 예상하지 않은 어떤일로
너무 빠르게 자기 빛을 바꿔버렸다.
혼자서만 계절을 어기고 달라져 버린 것이다.
사쿠라와
가을의 갈빛 고엽은 많이 다르지 않다.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것은.
같다.
어느 계절속에서 떨어지는 것이냐만 다를 뿐이다.
K가 … 도로 다시 찾았을 지
그대로 바랜 색에 적응 했을지 나는 모른다.
K에게도 그저
자신의 일이 계절이 다를 뿐인 것과 같은 것이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므로
잘은 모르지만.
그는 아마도.
아니면 틀림없이.
여름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나보다 더 먼저 가을 단풍속을 지나갔을 것이다.
하늘에서 별이라도 따서
하늘에서 달이라도 따서
가는 길을 밝히고
아직 그 겨울속에 머물고 있다면
다시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