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없다.
정말이다.
가지고 있는 기대라는 것은 사람마다 각자 다른 것이다.
남들의 것은 남들의 것이고
내것은 내것이다.
기대, 기회 모두 그런 분류로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
기대라는 것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 이라는 것이고
같은 말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결과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모두가 서로 다른 각자라서
애초에는 다른 것이다.
‘간절함’, ‘어느 정도’, ‘그럭 저럭’ 따위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을 빼고도 말이다.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기회라는 것을 잡으려고 한다.
죽을 만큼 부던히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없으니까 만드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 혹은 무작정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기대에 대한 원하던 결과를 얻기 위한
문 같은 것이다.
카지노의 잭팟 같은 것은 예외이겠지만.
내가 사막의 태양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너무 크고 강렬해서가 아니다.
자연의 경외감 어쩌고 하는 그런 미사여구
시적이고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고상한 이유.
그런 피곤한 것들이 아니다.
“저 곳의 태양은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생각될 만큼 가까운 하늘에 떠 있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단순한 생각인 것이다.
잡고 싶다는 것은
나의 기대이고 바람이고 희망이다.
잡아보기 위해서 ‘그곳에 가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그것을 잡는다는 단순한 생각이다.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런 것
스스로에게 희망을 만들어 주기 위한
‘억지’
그렇게 쉽게 말하는 것이 옳겠다.
또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에게 베푸는 배려’
그렇게 말하면 좀 멋있어 보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보다도
‘태양을 잡기 위해서 그곳에 가고 싶다’
라고 말하면
미쳤거나
멋있는척 하고 있다고.
또는 웃긴다고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렵거나 고깝다고 생각하지 말자.
사실은
기후가 따뜻한 곳에서 살고 싶은
바램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소탈한 것을 원할 뿐인데도
뜻대로 이루기가 힘들어 내색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저런 선인장은 10미터 정도 자라기 위해서
수백년도 걸린다고 한다.
식물따위가 무슨 희망이나 기대, 이유, 의미 같은
‘고등한 생각’ 또는 ‘고상한 생각’같은 것을 가지고 있겠냐만은
만약 생각도 있고 말도 할 줄 안다고 하고
“왜 그리 힘들게 자라기 위해 애쓰느냐?” 물어보면
혹시 저것들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까?
옆 동네 친구들이 잘 있는지 궁금해서.
그 뿐이라고.
그래서
그렇게 힘겹게 키를 늘려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냥 외로워서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이건 그냥 생각해 본거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