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집은
마을길을 내려가다보면 산자락이 끝나고.
농수로가 흐르는 곳 바로 앞에 있었다.
전형적인 깡촌 마을의 귀퉁이인 그런 곳 말이다.
초가집에 사는 J의 가족은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지만
가족이 많아서 활기찼고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
J와 나는 친했고 한살터울의 J와는 늘 어울려 다녔다.
마을의 또래는 J밖에 없었으므로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또 J를 처음 만난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 정신이 깨일 때 J가 이미 내 친구였었다.
신기하게도 나에게는 원래 부터 친구였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각각 길고 짧은 한 때를 지내기 위해서만
촌마을에 머무르는 나에게는
J는 그 시즌 동안의 유일한 친구였다.
J는 내게는 무척 좋은 친구이지만
오늘은 J의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친구 J의 집 근처에
그러니까
엎어지든 서서 걸어가든 굴러가든 상관없이
거의 코가 닿을 만한 곳에
사진 속의 저것보다 더 험한 초가집이 하나 더 있었다.
움막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듯 하지만
그냥 초가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말하면 빠른 속도로 슬퍼지게 되니 말이다.
오늘 쓰는 글은 그리 슬프게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그 움막스러운 초가집에는 할머니 한 분이 혼자 살고 계셨었다.
거동이 불편하고 허리가 많이 굽은
한 눈에 보아도 매우 나이든 할머니였다.
평소에는 그다지 관심은 없었지만
마을에서도 보기 힘든 매우 흉칙한 모습의 초가집이
마을을 지나가다 보면 계속 눈에 띄니
어느날이던가 문득 궁금하여 J에게 물었다.
“다른 것은 알 수 없다” 하였고
할머니의 나이는 99살이고 하더라는 말을 내게 했었다.
그 뒤로는 그저 그렇구나 하고 잊어버렸다.
그저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집에
사람이 살고 있으니 신기했을 뿐이었다.
3년쯤 뒤에
눈에 다시 띈 변함없이 흉칙한 초가집을 보면서 궁금해
J에게 할머니에 대해 다시 물어보니
또 나이가 99살이라고 하더라.
물론 J가 다소 우둔해도 거짓말을 할 아이는 아니다.
나도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100살이 넘으면 웬지 죽어 마땅할 나이인것 처럼 느껴져
왜 아직도 99살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고.
진짜 99살인지도 모르겠고.
99살이되면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찾아 오는 이도 없고.
말 거는 이도 보이지 않고.
집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으셨다.
농사를 짓지 않음도 물론이고.
가끔 보이는 모습은
어린 나이에 본 것이라 그렇겠지만
삶과 죽음이 구분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
그 초가집스러운 움막에서.
혼자 사시면서
무얼 먹고 사시느냐 J에게 물으니.
J가 말해주길
마을사람이 먹거리를 모아 가끔 갖다 준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래. 그렇다치고
아직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느냐 물었더니.
아들이 있다 하던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 하였고.
그 이상은 어른들이 얘기해 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집이 사라진 것은 발견한 것은 몇년 뒤였다.
할머니는 배를 움켜쥐고 부엌에서 죽었고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얘기들었다.
어디에 묻혔는지 누가 묻었는지도 모른다.
잠깐의 관심밖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죽어도 좋을 생명은 없다”
어떤 책의 제목이다.
굶어 죽은 것인지 노환으로 죽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어도 죽을 것이니 큰 화제는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죽어도 좋을 나이라는 것은 없고
굶어 죽어도 좋을 사람이란 없다.
그 집이 사라진 자리는 그대로 밭이 되었고
나중에 축사가 들어섰다.
마치 빠르게 걷어 치워 버린 것처럼
나중에 J에게서 이상한 말을 또 들었는데.
집터는 원래 밭이었고.
그 밭은 그 할머니 것은 역시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원래 밭인 곳 가운데 초가집을 지은 것이라고 했다.
묻지 않았다.
하지만 궁금했다.
그 축사의 주인이 할머니와 관계가 있는지
아니면 할머니와 관계가 있는 누군가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그 밭을 팔았는지.
왜 그렇게 내버려 두었는지.
빨리 죽어버렸으면 했던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