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

긴 길을 걷는 것은 고역이다.
온통 그런 기억밖에는 없다.
엄마손을 잡고 걸었던
꼬불꼬불 시골길은 너무 길었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짜증이 날 만큼.
할머니댁에서 역전까지
무한에 가깝다고 생각 할 만큼.
그렇게 생긴 길이 
왜 신작로라고 불리웠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사람 하나 겨우 지날만큼 되는 
옜날 오솔길을 보고 나서는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말이 오솔길이지 짐승들이나 겨우 다닐 것 같은 그런 길이다.
지금은 그 신작로 보다 훨씬 더 좋은 신작로가 생겼고
옜날길들은 다 사라졌다.
재수 좋으면
삼촌이나 뒷집아저씨, 옆집아저씨 기타 등등의 분들이
역전까지 경운기를 태워 주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너무 고된 길이었다.
덜그럭 거리는 경운기가
비포장길을 달려서도 한참을 가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지쳐 죽을 만큼 시달리면서 가야 했다.
역전에 가면 당숙모네 들려서 
조청이라도 한 숟가락 얻어 먹으면 행운이다. 
언제나 먹을 것을 주시니까.
그럴 수 밖에 없다. 
당숙모는 역전앞에서 가게를 하신다.
그래도 당숙모댁에서는 금방 나와야 한다.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역에 가야 하니까.
기차를 놓치면 왔던 길을 도로 가야한다.
그런적이 몇 번 있었다.
싫다.
죽어도 시간안에 역에 도착해야 한다.
역에 도착하고.
줄서서 표를 끊고
역에서 문 열어주기를 기다린다.
시간되면 역무원 아저씨가 문을 열고
표에 딸깍이 가위로 이빨자국을 받아야만 통과해서 승강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누군가를 배웅 나온 사람이라면
가끔은 표 안 끊고 플랫폼 까지 들어갔다 기차는 안타고 도로 나올 수도 있다.
보통은 무거운 짐을 들어주기 위해서 같이 들어 오는 경우다. 
플랫폼으로 들어가서 기차가 올 때까지 또 한참을 기다린다.
땡땡이 소리가 나면 기차가 멀리서 달려오게 되고.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서면
기관사 아저씨는 달리는 기차에서 몸을 내밀고
언제나 멋지게 파란깃발을 대롱에 꽂아 넣는 묘기를 부린다.
그걸 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실패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운이 좋으면 앉아서 갈 수 있다.
무궁화, 비둘기, 통일
잘 모르겠다. 
뭐가 더 좋은 기차인지는.
타본적은 없지만 기차는 무조건 새마을이 제일 좋다.
어쨌든
저 이름이 뭔가 자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안다.
비싼 기차를 타게 되면 번호 붙은 자리에 앉아서 가게 되지만
보통은 아무데나 빈자리에 앉는 방식의 기차에 탄다.
사람이 많을 때는 선채로 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가끔은 의자가 없는 뻥뚩린 칸에 타기도 해야 한다.
의자 있는 칸도 잘 앉아야 한다.
기차의자는 앞뒤로 움직일 수 있어서
뒤로 앉았다 앞으로 앉았다 하는데
뒤로 된 것을 타면 몸이 자꾸 밀려서 앉아 있기 불편하다.
여튼
그 보다 더 더 중요한 것은
어찌되었든 또 다시 지겹게도 오래 가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창밖에는 지겨운 
산, 논, 밭, 전봇대
그런것들만 휙휙 지나갈 뿐이다.
아저씨들 중에는 기차칸 밖에 계단에 서서 가는 시원하게 가는 아저씨도 있다.
그곳에서 보통 담배를 피우는데
초록색 옷 입은 군인아저씨들은 항상 한두명씩 있다.
중간쯤 가게  되면 기차안에서 표검사한다.
표없는 사람, 잃어 버린 사람은 돈 내야 한다.
표검사 아저씨가 기차표도 판다.
그때는 통로에 있는 군인아저씨들은 표검사 어찌 받는지 궁금했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군인아저씨가 표검사 받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그때는 군인이라면 돈을 안내고 탈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지겹게 오래 기차를 타야 한다.
앉아서 가면 잠들었다. 깼다. 뒤척였다를 무수히 반복하고
서서가면 쭈그리고 앉았다가 섰다가 걸어다녔다가를 반복하고
그러고도 한참을 가야 한다.
길고 긴 기찻길을 달려서
기어이 역에 도착하면
딸깍이 이빨자국난 표를 역무원 아저씨한테 주고
사람이 붐비는 역을 나와서
다시 그날의 마지막의 행운 바래야 하는 마지막 여로에 선다.
여기서
버스를 타면 조금 빨리 집에 갈 수 있지만
걸어서 가야 하는 날이면 곤란해진다.
걸어서 가야 하는 날
그렇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걷게 되는 날은
걸어가면서도 반쯤 잠이 든 상태가 된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날은 집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어린 시절 나는 밖에 거의 나가지 않는 편이었다.
문 밖을 나서는 순간 습관적인 피곤함이 이유없이 몰려왔다.
문 밖에서는 그냥 피곤했다.
조금 커서야 깨닫게 되었는데
원래 병약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나는 걷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이유란 것이 중요한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냥 그게 싫었던 것이다.
길이란.
나에게 길이란 .
멋지고 아름답고 꽃과 가로수가 줄지어 서있는 풍경을 얘기 하기 전에
얼마나 멀리 가야하는 것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한
그런 것이었다.
Author: deja-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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