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lightenment

나는 무엇인가?
진부하면서 뻔한 물음

오직 깨달음의 결과로
우리는 진정 이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무엇이며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것도 너무 뻔하고 우리는 답도 이미 알고 있다.

이것은 구도인의 삶이라고들 한다.
우리는.
또는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 길을 가는 것인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천국으로의 입장권을 갖기 위해서?
영원한 삶을 위해서?
영생불멸의 영화를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신이 되기 위해서?

너무도 뻔한 물음들
답을 얻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인간은 불합리하며
불일치하며
부조리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가야하는 길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무엇을 위한 깨달음인지 모른다고 한다.

그들은 평범한 인간
평범한 승려, 구도자로
죽음을 맞이하고
래생에 다시 인간으로 환생해야만
다시 또 기회를 얻는다고들 한다.

그 기회에 대한 확률은 언제나 매우 낮아
지극히 노력하고
선과 수행을 행하지 않으면 얻기가 힘듦은 분명하고.
그래서 나오는 역시 또
너무도 지극히 뻔한 대답들.

그래. 너무도 뻔 할 만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나인가?
그것 또한 깨달음의 결과로 진정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역시 뻔 한 답이겠지만.

그런데?
무엇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인가?
깨달음은 무엇인가?
이것도 뻔하고 낡아 빠진
말장난과 같은 물음이고.
역시 답 또한 뻔할 것이다.

이런것들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알면서도 우리가 얻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이고
무엇인지 안다고 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가?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고
모르고 있는 것 조차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아는 척하고
모두 안다고 생각하지만
진정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음을 알지만
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답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답을 알려하기 때문에 결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현학적이고 고매한 답 또한 알고 있음에도.
알아야 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깨달을 수 있는가?
아니다.
나는 얻을 수 있는가?
아니다.

노력은 하겠지만
아닐것이다.
적어도 내가 늦었고 부족하고 게으르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나도 아는 것이 있기는 하다.

그것이 시작이다.
깨달음으로의.

Author: deja-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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