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의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휘둘러 버린 탓으로
왼손 네번째 손가락이 무너졌었다.
무너진 네번째는
가벼운 반지하나를 힘겹게 걸친 채
움직일 때마다 늘 작은 욱신거림과 불편함을 내뱉으며
아픔을 내게 외친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시린 바람과 함께
잘 움직여 주지 않고
혼자 곧잘 잠들어 버린다.
어쩐지 주인을 매우 닮아서
적당히 잊을만큼이 되면
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렇게 만든 것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라는 것처럼
무관심에 대한 항변을 한다.
그리고 상기시켜 묻는다.
혹시 후회하지 않는지를.
혹시 미안하지 않은지를.
어린 시절부터
그리 편치 않은 몸으로 생겨났다.
나는 늘 다른 이들 보다
많은 시간을 잠들어 있어야 했다.
남들이 움직이는 만큼 움직이면
남들의 두 배를 잠들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이 움직이는 만큼 움직이고
남들이 자는 만큼만 자야했다.
그리고 남들이 노는 동안 부족한 잠을 자야 했다.
겨울이면 작은 움직임으로도 너무 힘겨운 탓에
긴 시간을 자야 했다.
곰이나 개구리처럼.
하지만 늘 그렇듯이
어릴적 어른들이란
그런것을 게으름으로 여기며
핀잔주며 나무라며 꾸짖는다.
나의 어리숙함으로 나는 그것을 설명하지 못하고
그저 지극히 게으른 탓으로 치부해버린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매우 잘 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이들을 나도 이해못했고 많이 원망했던 것처럼
나의 네번째도
나의 무신경과 무관심으로
다른 손가락들에 비해 힘에 겨운 일들을 강요받고
피로가 쌓여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을 때는
조금은 생각해 달라고 말하며
덜컥 멈춰버린다.
요령이 부족해서 노는 방법을 몰랐던 나는
당연히 휴식하는 방법을 몰랐다.
잠이란 휴식이 아닌 그냥 살기 위한 것이었고
휴식이란 어떤 것인지 알기 까지 남들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결국 분노가 쌓여도 해소하는 것을 모른채 오랫동안 살아왔다.
휴식 대신 각성을 위해 온통 몸에 상처를 내고 찢어 발기는
못된 습성을 익혀버렸다.
나의 네번째도 그렇게 망가진 내 몸의 일부 중 하나이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내 몸에 네번째를 닮은 것들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시린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이 되면
그것들이 번갈아가며 말하기 시작한다.
제발 살려 달라고.
나의 네번째는
올해도 겨울잠을 손꼽아 기다린다.